전세보증금이 집값의 90%인 매물이 위험한 이유
90% 전세, 싸다고 덥석 계약하면 안 되는 이유
부동산 앱으로 전세 매물을 보다 보면 주변 시세보다 확연히 저렴한 전세가 눈에 띄는 경우가 있다. 같은 단지, 같은 평형인데 다른 매물보다 수천만 원 싸다. 전세보증금이 집값의 90%인 매물이 위험한 이유를 모르면 이런 매물이 그냥 운 좋은 기회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매물이 왜 싼지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
전세가율이란 무엇인가
전세가율은 집값 대비 전세보증금의 비율이다. 집값이 5억 원인데 전세보증금이 4억 5천만 원이라면 전세가율은 90%다.
전세가율이 높다는 건 두 가지를 의미한다. 세입자 입장에서는 적은 돈으로 좋은 집에 살 수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동시에 집주인이 집을 팔아도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주기 빠듯한 상황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집값이 5억인데 전세가 4억 5천이라면 집주인이 가진 실제 자기 자본은 5천만 원뿐이다. 집값이 10%만 떨어져도 집을 팔아서 전세 보증금을 돌려줄 수 없는 상황이 된다.
집값이 떨어지면 무슨 일이 생기나
전세가율 90%인 집에 살고 있는 상황에서 집값이 10% 하락했다고 가정해보자.
집값은 5억에서 4억 5천만 원이 됐다. 전세보증금과 집값이 같아진 것이다. 이 상황에서 전세 계약이 만료되면 집주인은 집을 팔아야만 보증금을 돌려줄 수 있다. 그런데 집값이 더 떨어진다면 집을 팔아도 보증금 전액을 돌려주지 못하는 상황이 생긴다.
2022~2023년 부동산 하락기에 이런 일이 실제로 대규모로 발생했다. 집값이 빠르게 떨어지면서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세입자가 급증했다. 이것이 이른바 전세 사기, 역전세 문제의 핵심 구조다.
집주인이 악의가 없어도 문제가 생긴다
전세 피해라고 하면 처음부터 사기를 치려는 집주인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선의의 집주인도 전세가율이 높으면 의도치 않게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집주인이 전세보증금을 받아서 다른 곳에 투자했는데 그 투자에 실패했다면, 전세 만료 시점에 돌려줄 현금이 없다. 이 경우 집주인이 나쁜 의도가 없었더라도 세입자는 피해를 입는다. 전세 계약은 집주인의 재정 상태 전체에 영향을 받는다는 점을 잊으면 안 된다.
전세가율 몇 %부터 위험한가
업계에서 일반적으로 말하는 안전선은 전세가율 80% 이하다. 물론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다. 집값이 안정적인 지역, 수요가 꾸준한 대단지 아파트라면 80%를 넘어도 상대적으로 안전할 수 있다.
반대로 지방 소도시나 빌라, 오피스텔처럼 가격 변동성이 크고 거래가 잘 안 되는 매물은 70%도 위험할 수 있다. 전세가율은 절대 수치보다 해당 지역과 매물 특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계약 전에 확인하는 방법
전세 계약 전에 전세가율을 직접 확인하는 건 어렵지 않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서 해당 주소의 최근 매매 거래 가격을 확인하면 된다. 전세보증금을 그 가격으로 나누면 전세가율이 나온다. 최근 거래가 없다면 인근 유사 매물 시세를 참고하면 된다.
등기부등본에서 근저당 설정 여부도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집에 대출이 많이 끼어 있으면 집이 경매로 넘어갈 때 은행이 먼저 돈을 가져가고 세입자는 후순위로 밀린다.
전세보증보험은 완벽한 방패가 아니다
전세보증보험에 가입하면 보증금을 보호받을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맞는 말이지만 조건이 있다.
전세보증보험은 전세가율이 일정 수준 이하인 경우에만 가입이 가능하다. 가입 심사에서 전세가율이 너무 높으면 보험 가입 자체가 거절된다. 즉 위험한 매물일수록 보험도 안 된다는 의미다.
또한 보험금을 받는 과정이 간단하지 않다. 집주인이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서류를 갖춰 청구하는 과정이 수개월 걸리는 경우도 있다.
정리
전세가율 90%인 매물이 위험한 이유는 집값이 조금만 내려가도 보증금 반환이 불가능한 구조이기 때문이다. 집주인의 의도와 무관하게 구조적으로 위험하다. 전세 계약 전에는 실거래가 확인, 등기부등본 열람, 전세보증보험 가입 가능 여부 확인을 반드시 해야 한다. 싸 보이는 전세가 왜 싼지 이유를 먼저 따져보는 습관이 보증금을 지키는 첫걸음이다.